입이 뻣뻣하다는 교만

이성훈 목사
칼럼에서 모세가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 앞에서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히. 키 카베드 페우 케다브 라숀)(출 4:10) 라고 한 모세의 변명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으며, 또한 간결하면서도 논리적인 표현이었는지를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대하여 ‘말에 능치 못한 자라’(히. 로 이쉬 드바림)고 하였습니다만, 그의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그 어느 누구도 사용한 적이 없었던 매우 세련된 표현이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 자신이 얼마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변명한 그의 말이 얼마나 깔끔하였는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말 모세가 “말을 못하는 사람 맞아?”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하나님께 대한 모세의 이러한 모습이 자기 비하에서 비롯된 불신앙은 물론,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논리일까”라며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그럴 리가 있느냐?”며 반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모세의 모습 속에서 그가 광야 생활 가운데 체득한 겸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한 말의 의미 속에는 하나님의 일의 성공 여부가 자기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사역의 성공여부가 자기 말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극히 교만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그가 순종하지 못한 이유였으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한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골리앗 앞에서 상대도 되지 않는 다윗이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죽고 사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할 수 있었듯이 모세도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였다면 “내 입이 뻣뻣하다”는 말 대신 하나님 명령 앞에 “내가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로에게 나아가겠다”고 답했을 것입니다.

교만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신뢰하려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에게는 건강한 발달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계단을 잘 밟아야만 둘째 계단을 오를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야 그 다음 계단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모든 계단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계단은 첫 번째 계단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첫 번째 계단은 ‘하나님을 신뢰함’입니다. 이 계단을 잘 올라서야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과거 예수를 핍박하였던 사울은 믿음의 첫 계단을 잘 딛고 올라선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만큼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시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만큼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자존감을 세워줍니다. 무엇을 이야기해도 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살면 살수록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내 삶에 있어서 오직 하나만 구하라고 한다면 ‘오직 믿음’입니다. 내 삶에 ‘오직 믿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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