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난민정책을 취재하기 위한 독일 출장길에서 가장 특색 있게 본 것은 독일사회의 구석구석에 ‘보이텔스바흐협약’의 정신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독일의 통일은 바로 이 정신이 구현한 정치발전과 이에 따른 국민들의 원숙한 시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을 느꼈고, 이는 분열과 증오의 정치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에 긴요한 지침이라고 생각했다.

독일고전주의를 발전시킨 나라이면서도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나치정권을 탄생시킨 독일은 자신들의 과거를 깊이 반성하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치·시민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각계 인사들이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 모여 오랜 토론 끝에 시민·정치교육에 있어 반드시 준수해야 할 3가지 원칙을 정립했다.

원칙은 ①강제성 금지(강압적인 교화 또는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다) ②논쟁성 유지(논쟁의 쟁점을 모두 알려줘 교육받는 사람이 다양한 논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③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파악해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등 3개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협약은 본래 학교 정치교육의 지침으로 만들어졌으나, 모든 공교육 영역으로 확대돼 오늘날 독일국민들의 시민교육의 ‘헌법’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사회가 이 협약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논쟁을 하되 반드시 상반되는 관점을 다 소개한다는 ‘논쟁성 유지의 원칙’이다. 여러 레벨에서 정치·시민교육을 실시하는 독일은 이 협약에 따라 교육의 주체가 학교든 정치집단이든 시민단체든 반드시 현안의 논쟁이 되는 양면을 충실하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정착시켜 균형 잡힌 국민들을 키워내는 사회에서 어느 한쪽만의 입장만을 소개하는 집단은 여론의 외면을 받게 된다.

이에 비해 우리사회의 여론은 반대의 주장은 제거하고 자신이 속해있는 진영에 유리한 것만을 알려주고 있다.

지금 우리정치의 가장 뜨거운 현안인 패스트트랙을 놓고 보더라도 여당과 야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을 골라서(심지어는 왜곡해서) 주장하지 현안의 양면을 모두 소개하지 않는다.

현안의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하는 언론조차도 그런 정당의 하부구조처럼 되어 자사가 선호하는 부분만을 추려서 보도한다. 결코 양면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결과 국민 개개인은 균형감을 갖춘 사람이 되기 어렵고, 그래서 어느 한쪽 편에 서는 외눈박이로 살아간다.

이 문제와 관련해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음행한 여자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우리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 예수에게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져놓고 그가 어느 한 쪽의 문제에 빠져 곤란해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는 음행한 여자의 잘못과 함께 누군가를 돌로 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간교한 속마음을 동시에 보았다. 현안과 인간에 대해 균형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예수는 인간사에 길이 남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명답을 남겼다.    

모든 국민들에게 해당 사안의 논쟁적인 측면을 균형감 있게 알려주는 교육은 성숙한 민주시민을 육성시키는 핵심적인 사안이다. 세상사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한 사람은 쉽사리 일방성이나 선동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쪽으로만 몰고 가는 교육과 전달은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든다. 지금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는 우리사회의 욕설댓글은 우리가 어느 수준에서 헤매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현안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정치인은 상대를 존경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주장과 다른 지점에 반드시 자신의 관점을 보충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더욱 원만한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으르면서도 막된 소리를 해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국민을 존경하는 정치인이 되기 어렵다. 유권자들이 균형 잡힌 정치인을 주목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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