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일, 그것이 자비입니다. 그런 자들을 용서하는 일, 그것은 야만입니다. 폭군의 잔인함은 잔인함일 뿐이지만 공화국의 잔인함은 미덕입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검사로 위촉되었지만 사형을 구형하는 일이 싫어서 변호사가 되었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는 권좌에 오르자 표변했다. 그는 공화국의 잔인함은 미덕이라고 주장하며 셀 수 조차 없을 만큼의 많은 사람을 단두대에 세웠다.

▨… 그러나 인간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며 단정할 수도 없었다. 1794년 7월 28일 오후 5시, 로베스피에르는 한낮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자신의 명령으로 설치된 단두대에 그날 스무 번째로 목을 들이밀어야 했고 광장의 군중들이 박수하며 환호하는 가운데 그의 머리는 떨어져 굴렀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은 인간의 정치가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본보기로 회자된다.

▨… 교회정치는 권력투쟁의 자리가 될 수도 없지만 기회를 엿보고 ‘올인’하는 투전꾼들의 행보를 슬쩍이라도 해보려는 자리가 될 수는 더더욱 없다. 과거에는 부총회장 선거에서 금전이 오가고 흑색선전이 펼쳐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또 당선자가 전권을 고집해 의회부서나 항존부서 인선에서 말이 많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총회가 결코 로베스피에르를 원했던 적은 없었다.

▨… 흔히 교회정치를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113년차 총회는 우리교단의 정치가 ‘필요선’임을 당당하게 보여주었다. 장로부총회장은 단일후보를 세웠고 목사부총회장 선거에서는 낙선자가 당선자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걸어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나라의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교단의 정치에는 박수를 보내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제113년차 총회를 이끌어가는 이들이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세운 분들은 아니라고 확신해서 나태주의 시(멀리서 빈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후략) 제113년차 총회가 보이지 않는 꽃이기를, 풀잎이기를 다시 한 번 멀리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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