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성훈 목사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써 시작되는 개인적 성향이 짙습니다만, 신앙생활은 교회를 통하여 성숙되고 자라나는 공동체적 성향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아말렉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 첫 번째 치뤄졌던 전쟁으로서 모세는 이 때를 회상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아말렉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신 25:18)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약한 자들’(히.‘콜 네헤살림’)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의 ‘콜 네헤살림’은 ‘약한 모든 사람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노인들, 여인들, 그리고 병든 자들과 같은 비전투 요원들’을 가리킵니다. 이 약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던 아말렉인들을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신 25:18)이라고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뒤에 떨어진’ (히. 아하레이하, 신 25:18) 연약한 이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하는 사단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는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물론이고, 교회의 근육과도 같은 구역모임과 기관 등과 같은 소모임이 참으로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항상 ‘섬김의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떨어진 이들은 종종 사단의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나를 돌아보아 근신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주장하고 나를 고집하는 모습이 아닌 교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에게 싸움을 걸어오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택하여 나가서 그들과 싸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가겠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언급한 ‘하나님의 지팡이’는 과거에 ‘뱀으로 변하기도 하고(출 4:2~4), 애굽에 재앙을 내릴 때 사용하기도 하고(출 7:20; 8:5,16), 홍해의 기적을 일으킬 때 사용하던(출 14:16) 평범한 막대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를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히. 우마태 하엘로힘)라고 한 이유는 지금까지 평범한 지팡이를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일하실 것이라는 모세의 ‘하나님을 신뢰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전쟁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 사탄의 생각과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 보여도 이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입니다. 죄의 세력과 어두운 세상의 주관자들을 상징하는 아말렉과 처절하게 싸우는 동시에 철저하게 하나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이 있어야 합니다.

죄와 싸우는 일이 ‘일상적인 삶의 영역’이라면 주님을 바라봄은 ‘영적인 영역’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같이 가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 자신을 주목하는 이들을 향해 돌을 옮겨 놓으라는 ‘일상적인 영역’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의 부흥을 열망합니다.

만일 열심히 하는데 부흥의 열매를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는 ‘삶의 영역’과 주님 바라봄이라는 ‘영적인 영역’이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영적 전투의 원리를 잘 깨달아 항상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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