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에 이스라엘 성지순례 길을 떠났다. 기독교 신자로서 꿈꿔 왔던 버킷리스트였다. 수천 년의 기독교문화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어 종교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독교의 역사는 대략 4500여 년이 된다고 한다. 큰 틀에서 기독교를 신·구약시대로 나눌 수 있고 그 안에 가톨릭이 있다.

기독교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톨릭을 알아야 한다. 종교는 형이상학을 초월하는 위치에 있지만 종교조직은 인간에 의해 관리되는 체계다.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신을 앞세워 같은 종교를 분화시키면서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은 수천 년의 전통을 피라미드식 조직형태를 취하면서 종교체제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반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독교는 인간욕구의 다양성으로 분화종교로 꾸준히 변화, 발전되었고 그에 따라 교회는 독립적 단일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구 근교 팔공산 자락에 있는 ‘한티순교성지’를 찾았다. 해발 약 700m 한티 재와 인접해 있는 이곳은 1815년 을해박해와 1827년 정해박해 등 경상도 천주교 수난 때에 팔공산 깊은 산골에 숨어 지내다 순교한 옛 천주교인들이 살던 곳이다. 당시 거주하던 움막과 예배 장소인 공소 등이 재현되어 있다. 지금은 피정의 집, 순례자의 성당 등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순례자는 물론 공원 같은 분위기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33기의 무명 순교자들이 묻혀 있는 묘소 길에 들어섰다.

‘십자가의 길’ 이라는 푯말을 따라 올라가는 산언덕 오솔길은 가파르지가 않아 보행이 한결 편하다. 산속이라 사위가 나무숲이고 적막감마저 든다. 풀벌레가 뛰는 것을 보면서 가끔 무덤에 눈을 주면서 가을의 초입을 느낀다. 40여 분 간 걷는 길에는 띄엄띄엄 무덤들이 있다. 비석도 없이 오랜 풍상으로 봉이 평평하다. 고즈넉함이 순례자를 자꾸 숙연케 한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종교와 인간의 삶을 되뇌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 아주 유익했다.

한티순교지를 다녀 온 후 기독교 성지순례지를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10월 초, 여수시 율촌에 있는 손양원 목사 순교지로 향했다. 손양원 목사는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 1948년 여순사건 때 장남과 차남을 여의고 자식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는 6.25때 공산당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사회주의국가가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은 순전한 인간의 정치적 욕심이라는 생각을 떠 올린다.

전국의 가톨릭 순교성지가 단일체제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순교기념관은 단일교회에서 건립하고 관리되고 있다. 손양원 목사는 율촌에 있는 애양원교회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면서 사역하였다. 바로 그 교회가 주체가 되어 순교기념관을 건립한 것이다.

1994년 3월에 준공된 이 기념관은 512개 교회, 108개 기관, 663명의 개인 헌금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순교기념관 가까이 낮은 산 중턱에 손양원 목사와 두 아들의 무덤이 위아래에 있다. 묘지는 규모가 크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기대에 비해 순교지에서 감흥을 받지 못한 자신을 책하면서 오솔 산길을 내려온다. 뭔가 허전한 기분이다. 가톨릭 순교 성지처럼 기독교 성지도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만들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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