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7:11~19)

정덕균 목사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열 사람을 치유해 주신 사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나병환자들의 간청을 들으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깨끗이 나을 것을 믿고 돌아가서, 그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여 완치된 상태를 확인받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말씀대로 나병환자 열 사람은 돌아가다가 깨끗이 낫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예수님께로 돌아와,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감사는 선택입니다.

그 한 사람은 감사를 선택했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감사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매순간 감사를 선택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감사 대신에 불평과 원망을 선택하는 사람입니까? 감사를 선택하여 건강한 감사를 드리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감사란 무엇입니까?

건강한 감사는 은혜를 아는 감사입니다.
이 한 명의 나병환자는 자신을 고쳐주신 주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자고 하면, 나는 받은 은혜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나의 구주로 믿는다면 성경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불순종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살아있으나 마귀를 따르고 불순종만 하던 존재였다’라는 것입니다(엡 2장 1-2절).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나를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내 죄를 담당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의 십자가와, 독생자를 죽기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받은 은혜가 없다고, 받은 사랑이 없다고 말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받은 은혜를 헤아려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과거에 베푸셨던 은혜를 망각해서도 안 되지만, 현재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만들어지는 인생임을 잊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누구 때문에 얻어진 것입니까? 사는게 어렵고 힘들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떤 실업가가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서 모든 재산을 다 잃고 너무 낙심이 되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완전히 망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라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 아내가 죽었습니까?” “아니요. 살아있습니다” “당신 자녀들도 죽었습니까?” “아니요. 살아있습니다” “당신 몸이 병들었습니까?” “아니요. 제 몸은 아직 건강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예수님이 당신 곁을 떠나가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내 속에 계십니다” “그러면 당신 아내와 자식들도 살아있고, 당신 몸도 건강하고, 주님이 당신 마음속에 계시는데, 왜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 질문에 이 사람은 감사를 회복하고 새 힘을 얻어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곳곳에 배여 있음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주위를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 교회, 이 민족에게 남겨두신 것을 찾아본다면, 감사가 다시 발견되고, 감사가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작은 것, 숨겨져 있어 보잘것없이 보이는 것까지도 찾아내어 보면, 그 모든 것이 감사의 제목들뿐입니다.

건강한 감사는 구원받는 믿음으로 표현하는 감사입니다.
본문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때, 나병환자 열 사람은 모두 예수님께 기도하면 낫는다는 믿음도 있었고, 제사장에게 가면 병이 나았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병 고치는 능력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거기에서 멈추었다는 겁니다.

아홉 사람은 예수님이 내 병을 왜 고쳐주셨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들에게는 병을 고침받는 믿음만 있었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없었다는 겁니다. 말씀 한 마디에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는 분이라면, 죄와 죽음의 문제, 구원과 영생의 문제 또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 고침을 받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안타깝게도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처럼 거기에 멈추어 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신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옛 생활로 돌아갑니다. 자신이 원하는 문제만 해결되면 그만이고, 생수의 근원되신 예수님께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를 치료하시고 나를  회복케하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표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습니까? 말씀이 그 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인 나병환자 한사람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돌아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감사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신 것을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단계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에 적극적으로 감사할 때에, 비로소 주님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칭찬해주실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보면 구원의 믿음으로까지 자란 성도들이 감사를 잘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은혜를 받으면 저절로 감사하게 될 것 같고, 직분이 있으면 감사를 잘할 것 같고, 돈이 많으면 감사하게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구원의 믿음으로 성숙하게 될 때에 하게 됩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았다해도 그 은혜가 구원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집사, 안수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고 해도 구원의 믿음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감사하지 못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셨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하게 됩니다. 이 진리를 모르면, 교회에서 ‘감사하라’고 하면 돈 내라고 하는 줄로만 오해합니다. 교회에서 믿음이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감사를 자주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감사를 자주 하는 사람입니다.

‘일상이 감사인 사람은 일상이 기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사고를 당하지 않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작은 일 하나부터 감사하기 시작할 때 그곳에서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는 천국에, 불평은 지옥에’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때와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때마다 일마다 모든 일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날마다 알고 기억하여, 중심으로 표현하는   건강한 감사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