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가 에이즈 박사로 거듭나”

평신도대학원(이사장 홍진유 장로, 원장 김춘규 장로)는 지난 12월 5일 총회본부에서 조명환 교수(건국대, 금호교회 장로) 초청 목요강좌를 열고 영성을 증진했다.

이날 조명환 교수는 본인의 간증집 ‘꼴찌박사’의 내용을 중심으로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그가 어떻게 대학교수가 되었고 전 세계 에이즈 퇴치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는지를 간증했다.  

조 교수는 부모님이 6.25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실향민이었고 아무런 기반이 없었기에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태어났지만 믿음의 가정에서 부모님의 기도, 말씀양식을 충분히 공급받으며 자랐다.

한국이 외국의 원조를 받던 시절, 미국의 영적 어머니 ‘에드나’ 여사가 45년간 매달 15달러와 편지를 조 교수에게 보냈고 그런 한국과 미국 부모님들의 사랑과 기도로 “오늘날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그는 간증했다.

조 교수는 “에드나 어머님은 평생 비행기 한번 못 타보고 마지막 직업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일 정도로 부자가 아니었다”며 “자신이 가난했지만 더 어려운 어린이를 위해 기부를 시작했고 그의 15달러가 오늘날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에이즈 퇴치를 위한 수조 원, 수십조 원이 되었다”고 했다.  

조 교수는 학창시절 뚜렷한 목표도 없고 성적이 낮아 대학을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건국대 김명진 교수로부터 당시 비인기학과인 생명공학과에 들어가 그 분야 공부를 10년 동안 열심히 해보라는 조언을 듣게 됐다.

김 교수의 조언으로 그는 건국대 미생물공학과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고 이후 유전공학 붐이 일면서 미국유학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의 첫 유학생활은 성적이 낮아 실패했고 그에게 낙제점을 준 대학 교수의 추천으로 애리조나대학 미생물·면역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에이즈(AIDS)를 공부하게 됐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조 교수는 건국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으며 1989년 에이즈 진단시약을 세계최초로 개발하고 2005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조 교수는 또 에이즈 퇴치기금 마련을 위해 항공기 요금에 기부금 1,000원을 붙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아프리카의 백만 명 이상의 어린이를 무료로 치료받게 했다.

또 ‘시장개입’을 통해 에이즈치료 약품의 공급과 수요를 조절해 적절한 가격을 유지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에이즈 퇴치 기금 모금에 앞장서는 등 2030년까지 에이즈를 완전히 정복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한편 평대원은 이날 조명환 교수의 강의를 마지막으로 올해 2학기를 종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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