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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1209호] 2019년 12월 11일 (수) 19:08:16 김종국 목사(구미중앙교회 원로) kehcnews@daum.net

   
     김종국 목사
여름과 가을은 무게가 사뭇 다르다. 여름 뭉게구름은 무겁게 보인다. 더위에 흠뻑 젖어 후덥지근한 바람도 그렇다. 햇빛도 중량감이 있다. 여름 햇살은 쇳덩이를 짊어진 것처럼 금방 등허리에 땀방울을 맺히게 해, 무거움을 느낀다. 그런 날은 몸도 무거워 집 안에 있고 싶다.

하지만 가을에는 바람도 구름도 햇볕도 산과 들도 가벼움으로 가득 찬다. 가을 솔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몸도 가벼움으로 충만해져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이렇게 무거움의 계절과 가벼움의 계절을 넘나들며 살아온 나는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평생을 울고 웃었다.

결혼초기, 밤이면 식은땀으로 베개를 흥건하게 적셨고 내 앞가슴의 갈비뼈는 앙상하게 드러났었다. 얼마 못 살 사람으로 보여 불안해하는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정말로 민망했다.

그 때는 무던히도 체중을 늘리고 싶었으나 묘책이 없었다. 맥주가 살을 찌우게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오죽했으면 꺼림칙하면서도 캔 맥주 한 박스를 은밀하게 숨겨두고 절반쯤 마시다가 포기한 적도 있었다. 씁쓰름한 그 맛에 길들여져 술꾼이 될까 걱정이 돼서였다. 그토록 바라는 넉넉한 체중의 한을 풀지 못하고 젊은 날을 보냈다.

나이 들면서는 그 소원이 어디로 간 건지, 가벼운 내 몸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다. 요즘은 옷이나 신발이나 모자나 장갑을 살 때 가벼운가를 먼저 따진다. 몸의 총량을 더욱 가볍게 하고 싶어서다.

가벼움을 좋아하는 건 나만이 아닌 것 같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벼움의 열풍에 빠져있다. 모두들 체중감량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육체도 정신도 가볍고 홀가분한 쪽으로만 기울고 있다. 가정을 쉽게 깨는 것도 결혼을 꺼리는 것도 출산을 기피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가벼움에 맛들인 때문일까. 영혼까지도 빼 버리고 홀가분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영혼은 인간됨의 증명서인데도 말이다. 하긴 영혼은 인간 무게의 전부이니 큰 부담일 수 있다.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은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해도 개의치 않는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말과 영혼 없는 행동이 횡행 하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세상이 바람 앞에 검불처럼 향방 없이 굴러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

교회도 세상을 닮아가는 건지 가볍기는 마찬가지다. 십자가와 거룩함은 입술에만 있고 그 무거움의 실체가 없어 보인다. 성경말씀과 교회현장의 괴리현상이 심각하다.

교회의 이런 모습에 상처를 입고 우리를 뛰쳐나가 방황하는 양떼, 가나안 신도가 늘어간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현실의 엄중함도 깊은 성찰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더러워진 양 우리를 청소하고 훼손된 울타리를 고쳐 잃은 양들을 찾아 들일 방법이 없다.

어느 시대든지 교회가 말씀을 외면하고 십자가를 가볍게 여길 때는 무게 중심을 잃었었고 지도자들은 한눈을 팔았었다. 요즘 양분된 진영논리로 시끄러운 정국에 뛰어들어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걱정한다.

또 다른 편에 서있는 양들이 입을 상처는 왜 보지 못 할까. 이래저래 교회가 가벼워 보인다. 교회의 가벼움이 남의 탓만은 아니다.

응당 묵직하게 져야 할 짐을 어떻게든 가볍게 지려고 묘수를 찾으며 살아온 내 탓이 크다.

내가 무거워졌으면 좋겠다. 생각이 무겁고 말이 무겁고 행동이 무거웠으면 좋겠다. 십자가와 성결을 포장용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내 삶에 속속들이 배이도록 살았으면 좋겠다.

젊은 시절, 살덩어리를 키우지 못해 안달하던 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
이제는 십자가 복음으로 영의 사람을 통통하게 살찌우는 일에나 전념하다가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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