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두 타던 무당이 예수쟁이 되다

최예원 씨(인천 새힘교회·사진)는 한때 작두를 타던 무녀였다. 가수를 꿈꾸던 평범한 소녀였지만  어느 날 답답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점집을 찾았는데, 대뜸 신이 왔다고 했다. 다른 점집에서도 똑같은 점괘가 나왔다. 18세 때부터 무병(巫病)을 앓다가 견딜 수 없어 25살에 신내림 굿을 하고 무당이 되었다. 많은 신을 받았다고 해서 ‘만신’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인천시 구월동 모래네 시장 근처에서 신당을 차렸다. 금세 신력이 높아 영험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여러 문제가 해결된다고 소문이 나면서 형편도 펴지고 넓은 집으로 옮겼다. 유명 세를 타면서 방송국에 찾아왔다.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무속생활을 할수록 몸도 마음이 지쳐갔다. 류머티즘 관절염, 다발성 척추염좌로 수시로 탈골되었다. 당료와 저혈압으로 수차례 쓰러졌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했다. 전세 자금도 날리고 빚까지 졌다. 빚을 갚을 길이 없어 파산 신고에 들어갈 정도로 남는 것이 없었다. 남편과는 끝내 이혼하게 되었다. 친정 식구와도 관계가 좋지 못했다. 마음 편하게 기댈 곳 하나 없었던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하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몸도 마음도 망가지게 됐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자살충동까지 찾아왔다. 15톤 트럭에도 뛰어들고, 바다에도 뛰어들었다. 법당도 문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내일 아침은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던 중 동네에 있는 교회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 교회 다닌 적이 있었던 그녀는 “무당 짓은 그만하고 이제 교회를 다니라”는 할머니의 마지막 부탁에 용기를 얻어 지난 1월 22일 수요일 저녁 교회를 찾았다. 새힘교회(강경천 목사)였다. 주변에 여러 교회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교회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공황장애가 있어서 걱정도 됐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그때부터 교회는 그의 안식처가 되었고, 탈출구였다. 물론 처음엔 영적 싸움이 대단했다. 교회에 오면 숨을 쉬기 어려웠다. 귀에서 ‘나가자’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서 예배 도중에 누워 있을 때도 있었다. 사방에서 어깨와 팔 다리를 잡아당기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이것이 귀신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강경천 목사는 안수 기도를 했고, 곧 평정을 되찾았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 최예원 성도 무당 시절
그녀는 죽어도 교회에서 죽고, 반드시 다시 태어나겠다고 각오로 계속 교회를 찾았다. 세 번째 교회를 찾은 날이었다. 또 마음이 답답해왔다. 아직 기도도 제대로 할 줄 몰랐지만 그저 “살려주세요. 주여! 살려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였다. 갑자기 혀가 꼬이고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처음 경험이었다. 기분이 묘하고 생소했는데 나중에 하나님께 주신 방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배드릴 때 시원한 바람이 쓰윽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아마 성령님인 것 같아요. 그때 너무 편안했어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한 그녀는 당장 불상과 항아리 단지 등 불당에 있던 우상을 미련 없이 처분했다. 기분이 홀가분했다.

주님을 만난 후 요즈음 그녀는 행복에 빠져 산다. 법당에서 일 할 때는 신경질 적이고, 짜증을 많이 냈지만 지금은 너무 밝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가정도 회복되었고, 딸과 관계도 회복되었다. 우울증도 좋아졌다. 더 이상 영적으로 괴롭지도 않다.

“하나님이 내 안에 항상 계시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내와 함께 계기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지금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교회에 가는 것이다. 교회 가는 시간만 기다려지고 교회 갈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코로나19 정국에도 빠질 수 없었던 이유다.

“교회 가는 게 숨 쉬는 것이고 살아 있는 겁니다. 코로나19에 감염돼도 교회당에서 죽고 싶어요.”

그런 그녀는 하나님의 따듯한 자녀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전도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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