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현 목사
공자는 제나라를 다스리던 제후 경공과 재상 안영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경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정치가 무엇인가? 공자가 ‘천하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라고 하자 아름답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라고 다시 물었다.

공자는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름다운 상태란 자기 자리에서 자기다움에 충실한 상태를 말한다” 아버지의 도리, 자식의 도리, 임금의 도리, 신하의 도리를 충실히 할 때 천하는 아름다워지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일을 겪고 있다. 하나는 국가적인 일이다. 4.15 총선으로 새로운 일꾼들이 선출되었다. 나름대로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 일꾼들이 뽑혔다. 또한 아직도 마무리 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는 한국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새로운 질서로 몰아넣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교단적인 일이다. 새로운 총회 임원과 총무 선거를 행할 총회가 목전이다.

공자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공자의 말을 통해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가 유래했다. 자기답게 모든 일을 해 가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의 말로 우리 스스로를 질문해본다. 우리 주변에 ‘자기다움’으로 사는 자들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자기다움’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자기다움으로 살려면 가까이해야 할 사람과 멀리해야 할 사람이 있고, 가까이하고 멀리해야 할 가치가 있음을 구분하고 실천해야 한다.

기독교의 ‘자기다움’은 진리를 고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진리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는 타인(불신자)에 의해 진리가 훼손되거나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 이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다. 진리가 표출되는 방식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접하는 종교계의 상황을 보면, 원칙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실리는 취하고 내부결속은 강화하는 불교와 가톨릭이 국민들에게 점수를 후하게 받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 고수는 ‘교회종사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교회를 치리하는 목회자와 교인을 대표하는 장로, 만인제사장직을 충실히 감당해야 할 성도들에 의해 결정된다. 역할은 조금씩 달라도 모두가 교회를 지키고 진리를 사수해야할 지도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다움’에 충실하면 절대로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정부답게 일하면 된다. 총회 일꾼들은 총회답게 사역하면 된다. 교회는 교회답게 진리를 사수해가면 된다. 각자가 맡은 일을 역량껏 감당하면 그만이다.

기독교는 무한 책임이 있다. 이것은 누가 준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장하고 성숙해져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얻어진 결과물이다. 무한한 사회적 책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신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의 끝자락에 와 있다. 돌이켜보면 정부나 질병본부나 국민이나 교회나 모두가 힘들게 여기까지 왔다. 두 달여간 사회적 거리를 두고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혀가며 방역에 애를 써 왔다. 우리 국민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 일이 있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다움’의 시간들을 보낸 모두의 노력 덕분이다. 공자가 말한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를 생각해 본다. 임금과 신하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답게 행동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보편적 가치는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정부와 국민, 총회와 개교회가 각각 ‘자기다움’의 행동을 통해 새로운 미래공동체를 세워가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