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의 영원한 ‘모교회(母敎會)’ 중앙교회

중앙교회(한기채 목사)는 성결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이다. 중앙교회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시작(1907년)을 함께하며 성결교단과 성결교회를 위해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헌신하고 충성 봉사했다. 중앙교회의 전모와 역사를 파악하려면, 우리는 저 충정로 애오개 고개마루에 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난 후, 종로 1가 뒤편 지금은 평범한 카페가 자리잡고 있는 무교정 복음전도관의 터를 밟고 서 보아야 하며, 지금의 중앙성결교회가 서 있는 동대문 언덕에 올라보아야 한다.

충정로 애오개 고개마루에서 중앙교회까지 가는 길, 길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면 빛나는 성결의 역사가 아로 새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보신각을 지나 제일은행본점 맞은 편 도로 변에서 좁은 인도 벽 쪽 아래 바닥에 “성결교회의 모교회(母敎會)이며 서울신학대학교와 성결대학교의 모태가 된 중앙성결교회 1907년 5월 30일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표석이 심겨져 있었다. 소금전골, 염곡(鹽谷)동 복음전도관이었다.

이명직 목사에 따르면, 동양선교회 선교사인 카우만과 김상준, 정빈 두 한국인 사역자들이 “다 쓰러져가는 집 몇 칸을 세내어 동양선교회복음전도관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시작했다고 한다. 사중복음의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종로 1가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면 아무 표지도 없는 이름 모를 한 카페 앞에 무교정 복음전도관의 옛 자리를 만날 수 있다. 표석도 없지만, 우리 성결인들이 기억해주고, 다음 세대에서 이 찬란한 사중복음의 영광을 전수하여야 한다. 종로를 지나 동대문 언덕에 오르면 중앙교회가 나온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다.

한기채 목사는 중앙교회가 사중복음 DNA를 물려받은 교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소개한다. 김상준과 정빈에 의해 시작된 중앙교회는 어머니 교회답게 지금까지 아현교회, 한우리교회, 경기도 광주교회 등 69개의 교회를 세웠다.

교회를 낳는 성결교단의 ‘모교회’였던 중앙교회에는 단벌 치마저고리의 홍대실 권사가 있었다. 단벌 한복치마저고리로 평생을 사셨던 홍대실 권사는 기성과 예성 두 교단의 총회본부 터전과 대학부지를 마련하신 분이다. 교단을 섬길 수 있도록 배후에서 간절히 기도하시고 물질로 후원하신 청지기의 삶을 사셨다. 우리는 홍대실 권사의 헌신과 중앙교회를 통해서 모교회라는 말이 ‘처음 시작’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낳으시고 기르신 교회’라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앙교회는 우리교단의 총회장을 역임하신 고(故) 이만신 목사가 목회를 하시면서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사중복음의 적통을 이어가는 교회로 굳건하게 자리매김 했다. 문준경 전도사의 사중복음 순교의 영성으로 충만했던 중앙교회는 성결교단 뿐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성령운동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교회가 되었다.

한기채 목사의 취임 후, 중앙교회는 영적으로 지성적으로 더욱 성숙하여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었다. 한기채 목사는 사중복음의 순교적 영성을 글로 잘 엮고 책으로 출판하여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성결의 가치와 사중복음의 본질을 널리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 중의 하나인 밴더빌트대학교(Vanderbilt University)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철학박사(Ph.D)를 취득한 한기채 목사의 탁월한 신학적 전망과 수려한 필력으로 소개되는 성결신앙에 관한 책들은 늘 베스트셀러가 되곤 한다.

올해는 제114년차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총회장으로 한기채 목사가 추대되는데, 이렇게 되면 중앙교회는 서울신학대학교의 19대 총장인 황덕형 총장과 제114년차 한기채 총회장을 동시에 배출하는 성결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광스러운 역사를 소유하는 교회가 된다.

이는 지금까지 성결교단의 모교회로 중앙교회가 수고하고 헌신한 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시고 베풀어 주시는 축복이며 격려이리라! 동시에, 이제는 성결교단을 넘어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한 모교회로서 새로운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이리라!

오늘도 중앙교회는 사중복음을 상징하는 4가지 색을 담은 호롱불이 서울의 중앙을 찬란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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