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교육이 변하고 있다 -5

박종석 교수(서울신대)
한 눈에 교회 사정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예배가 끝나고 담임목회자와 신자들 사이에선 일상적 인사도 없었다. 오후 예배를 준비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적은 교회가 이러니 큰 교회야 말해 무엇햐겠느냐?”고는 말하지는 않겠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한다. 그 이유들은 이렇다. “천주교는 묵상을 강조하는 데 반해 개신교는 덮어놓고 믿으라고 한다” “헌금을 많이 내라고 강요하더라” “예배에 한 번 빠지기라도 하면 죄인 취급한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하며 사생활까지 마구 파고드는 교회가 불쾌하다” “막무가내식의 지나친 전도, 자기 교회에만 나오라는 강요 등이 피곤하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유들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최대 공약수를 찾아보자. 정답! ‘교육과 인간 부재’.
하지만 교육과 인간, 그리고 거기에 목회까지, 이 셋은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요즘 정말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설교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에는 노인 신자의 비중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학교 채플이건, 출석 교회건, 방문 교회건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예를 들어, 노후 생활이나 죽음 등에 관한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설교에 관한한 한 마디로 교회에 신자는 없다.
목회자 양성기관인 신학대학원 강의 시간에 우스갯소리처럼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 신학 배워서 이 담에 목회 할 거죠? 근데 목회라는 것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인데(이게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신학’이란 것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라 사람을 잘 모른다는 거에요. 그러니 어떻게 목회를 잘 할 수 있겠어요”
생각해보자. 당신은 설교할 때, 청중을 고려하는가. 청중의 수준이 어떤지, 청중이 어떤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전달해야 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생각해보고 설교하는가. 당신은 청소년들에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개역성경>을 들고 읽으라고 강권하지는 않는가. 찬송가 멜로디가 너무 느려 가사가 들어오지 않는 젊은이들을 이해하는가. 목회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고정되지 말고 다음에는 눈을 돌려 신자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바로 사람을 바라보는 그 눈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요즘 교회에 가면 흔히 눈에 띄는 것이 “양 날개로 날아오르는 00교회”라는 표어다. 그것이 단지 두 교회라도 신기한데 여러 교회의 표어가 동일하니 기가 막히다. 신자가 확연히 다를 텐데 어떻게 교회의 방향이 같을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우리 교회의 목회, 좀 신자들을 배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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