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복음전도대 사역의 결실

희년복음전도대의 집회는 옥내옥외를 막론하고 가는 곳마다 인사인해를 이루어 구도자와 회개하는 자, 중생과 성결의 체험, 신유의 체험을 하는 성도들과 재림의 신앙인들이 벌떼 같이 일어났다. 거짓 스승의 미혹을 받아 방황하던 자들이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다. 금식기도와 철야기도에서 나타난 영적 갈망은 주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케 하였으며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지방적으로 사탄의 이간정책에 속아 불복하고 불목하던 모든 서글픈 감정들이 일소되어 사랑으로 뭉치는 역사가 일어났다.

부대장 이정율 목사는 당시 청년회전국연합회 회장이었는데 청년회가 임마누엘 서적판매로 문서전도를 하였다. 임마누엘 서적은 주로 이성봉 목사의 명심도, 천로역정 강화 등이었는데 이 서적 판매를 통하여 청년회는 순이익금으로 강원도 산촌의 교역자를 보조하였다. 또한 청년회는 대만 선교사를 후원하기도 하였는데 전도대원들은 십일조로 대만선교사를 후원했다.

희년복음전도대는 성전건축을 하고 난관에 봉착한 전북지방 태평교회와 강원지방 초당교회, 서울지방 수정교회와 전남지방 주월동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이들 교회를 20만환씩 보조해주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또한 희년기념교회로 영등포 문래동에 40만환을 드려 자그마한 교회당을 사서 문래동교회를 설립한지 불과 1개월에 50여명이 모이는 교회로 발전하였다.

동양선교회 선교부에서는 희년은 12월로 마감한다며 보조를 끊었다. 그러나 전도대는 총회 때까지는 자급으로 자유전도를 계속하였다. 부대장 이정율 목사는 제주도로 파송하고, 총무 정운상 목사는 신개척한 교회들을 도와주기로 하고, 이성봉 목사는 계속해서 지프차를 몰고 임영상 집사와 함께 각 교파를 망라하여 간청하는 교회와 지방에 희년의 복음을 널리 전했다.

희년전도대는 1년 동안 50주년을 기념하여 50개 처소에서의 집회를 계획하고 출정하여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하였는데 초기성결교회의 장막전도를 방불케 하는 큰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다. 5월 15일부터 그해 말 복음전도대 사역이 막을 내릴 때까지 330회에 걸쳐 희년의 나팔을 힘차게 불었다. 특히 1957년 9월말부터 12월말까지는 세계적인 성결운동가인 퍼거슨 박사가 내한하여 두개의 전도대로 나누어 놀라운 활약을 했다.

그런데 그만 아쉽게도 1957년 12월말 선교부의 보조가 끊어지고 경제적 여건으로 총무와 대원이 감원되는 바람에 전도대는 거의 해산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성결교회의 희년을 맞아 구성된 복음전도대는 321일간 지방회 및 감찰회를 중심으로 한 집회 63곳, 개교회의 집회 32곳 등 총 96곳에서 집회를 가졌으며 그 결과 신구도자가 3103명, 회개체험자가 3577명에 이르는 보기 드문 성과를 거두었다. 성결교회 희년의 놀라운 부흥의 결실로 이어졌다. 

성결교회의 희년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고난과 지도자들의 부재 속에 성결교회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출발점이 되었다. 특히 희년복음전도대의 사역을 성결교회가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으로 도약하는 힘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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