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성교수(서울신대·기독교윤리학)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판단하는 윤리에 규범윤리와 상황윤리가 있다. 규범윤리는 윤리적 법칙이나 도덕적 원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며 상황윤리는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다. 상황윤리에서는 규범의 상대적 타당성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범법행위도 정당화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일,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거짓말, 전쟁터에서 적군을 죽이는 행위의 경우이다.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도 안식일 날 계명을 어기고 병자를 고치셨다.(눅 6:6~11)  이것은 상황윤리적이 아닌가?

상황윤리가 ‘상황’이라는 용어 때문에 잘못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윤리적 판단을 하는 것을 상황윤리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상황윤리가 아니라 무원칙의 무율법주의이다. 상황윤리에서 윤리적 판단의 원리는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행하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황윤리라는 용어는 1966년 조셉 플레처가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를 출간한 후 ‘상황윤리’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었고, 상황윤리에 대한 찬반의 논쟁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물론 이 책이 나오기 이전에도 윤리적 판단에서 상황을 중요시하는 ‘상황주의적 윤리’는 있었다.

기독교윤리를 상황윤리로 파악한 플레처는 도덕적 결단을 내리는데 율법주의, 무율법주의, 상황주의가 있다고 하고 자기의 입장은 상황주의라고 하였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흔히 하는 유명한 말도 ‘상황윤리’라는 책에서 조셉 플레처가 한말이다.

플레처는 예외적 상황에서 도덕규범을 어긴 일을 정당화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수용소에서 석방되기 위한 방편으로 임신을 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갖고 가족에게 돌아온 독일의 베르크마이어 이야기, 강간을 당해서 임신한 태아의 낙태문제 등을 들고 있다.

플레처식의 상황윤리는 문제점이 많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상황윤리에서 윤리적 원리와 판단기준으로 삼는 ‘사랑’이라는 용어가 매우 애매하게 사용되었다. 그뿐 아니라 극단적인 한계상황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들을 가지고 보편적 윤리기준을 삼은 것이 문제점이다.

실제로, 누구든지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렇다고 원칙이나 법칙을 전혀 무시 할 수 없다. 플레처처럼 도덕적 규범을 무시하면 도덕적 무질서 사회가 될 것이다. 규범이냐 상황이냐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규범윤리와 상황윤리는 상호보완적이 되어야 한다. 윤리의 바른 방향은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랑의 윤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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